격 려 사

이번에 이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영문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될 學會誌 {영문법}의 출간을 보게되어 기쁜 마음 금할 수 없고, 더구나 일생을 오로지 영문법 연구와 교수에 전념해 온 필자로서는 깊은 감회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전개된 영문법 연구의 실태를 반성해 본다면 반드시 밝은 면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자성의 목소리에도귀를 기울일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문법에 대한 개념을 설정하는 데에도 여러 방향과 각도를 생각할 수 있다. 一般 내지 普遍文法인 '生成文法'에서는 모든 언어에 내재(內在)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언어능력(competence)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個別 내지 特殊文法인 '영문법'이나 '불문법'(French grammar)에서는 영어나 불어의 구조(structure)를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영문법이나 불문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생성 문법에서 성취한 유익한 이론(theory)을 활용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영문법 또는 불문법에서는 '영어'나 '불어' 등 개별 언어의 구조를 연구한다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따라서 "Grammar deals with the structure of languages, English grammar with the Structure of English, French grammar with the structure of French, etc." (Jespersen, 1933: 15) 라는 말을 꼭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하겠다.


영문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일반 언어 이론에 통달한다고 해서 해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자기의 연구 대상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인식한다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기에 영문법 학자들의 연구 대상은 어디까지나 '영어'라는 '개별언어'이며, 영어라는 언어를 떠나 영문법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여기서 각별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과학에서와는 달리 인문학(humanities)에서는 참신성만이 언제나 유일한 덕목이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인문학에서는 지금도 아직 Plato의 Republic, Aristotle의 Poetics, Kant의 Kritik, Descartes의 Discours, Shakespeare의 Hamlet등이 중요한 유산으로 간직되고 있다.

우리는 영문법에 찬란한 업적을 남긴 과거의 유산을 결코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된다. E. A. Abott, K. Brunner, G. O. Curme, L. Dauzat, M. Deutschbein, H. W. Fowler, W. Franz, C. Fries, A. S. Hornby, O. Jespersen, L. Kellner, E. Kruisinga, E. M tzner, C. T. Onions, H. Poutsma, R. Quirk, P. Roberts, E. A. Sonnenschein, H. Sweet, T. Visser, J. Wright, R.W. Zandvoot 등의 저작을 영문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읽어야 한다. 선배들이 이룩해 놓은 업적들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이론에 대해 각별한 호기심을 가질만한 여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 연구 방법론에 관해 몇 마디 하기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영문법을 다루는 방향을 보면 지나치게 수평적 또는 共時的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이러한 추세를 적절히 수정하여 수직적 또는 通時的인 방향도 아울러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재시라는 틀에서 영어의 구조를 고찰하는 데 그칠것이 아니라, 통시적인 입장에서 영문법을 고찰하는 방향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역사적으로 혈연관계에 있는 여러 언어와 서로를 비교·대조하는 비교문법도 아울러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영문법의 완벽한 연구진행을 위해서는 한가지 방법론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방법론의 존재를 의식해야만 하는 것이다.


영문법이라고 해서 언제나 '현대영어'의 문법연구에만 그치라는 법은 없다. '고대영어'(OE)의 문법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또한 '중세영어'(ME)나 '초기현대영어'(Early Mod E)의 문법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영문법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시야를 넓히고 각고의 노력을 하여 고대영어, 중세영어 및 Shakespeare의 영어에 대해 나름대로의 소양을 지녀야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볼 수 없지만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영어와 불어(French)나 또는 독어(German)를 비교하는 비교문법서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영문법 하나를 공부하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어떻게 불어나 독어와 영어를 비교하는 비교문법에까지 손을 댈 수 있느냐고 의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라면 몰라도 솔직하게 말해 영문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혈연관계에 있는 불어나 독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영어에 지대한 영향을 준 라틴어나 그리스어를 알고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일들에 쪼들려 지금까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도 부족하여 정상적인 영문법 연구에 지대한 장해가 되어왔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우리 나라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기약하게 될 것인데, 이러한 추세에 보조를 맞추어 영문법 연구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발전이 이룩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趙 成 植(한국 학술원 회원)